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맷 맥퀸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스코틀랜드 하스힐에서 태어난 맥퀸은 1892년 10월 리버풀의 [[존 맥케나]]와 [[윌리엄 바클레이]] 감독이 이끄는 리버풀과 계약하기 전까지 스코틀랜드 리그의 리스 애슬레틱과 하츠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1892년 10월 29일, 안필드에서 열린 뉴타운과의 FA컵 2라운드 경기에서 그는 리버풀 데뷔전을 치렀으며, 같은 해 12월 3일에 리버풀 데뷔 골을 넣었다. 이 골은 선제골이자 결승골로서, 해당 경기에서 리버풀은 플리트우드 레인저스를 7-0으로 완파했다. 맷 맥퀸은 그의 형 휴 맥퀸과 함께 초창기 리버풀에 입단한 최초의 선수들로 유명했는데, 맥퀸 형제는 1892년 리버풀이 창단된 직후 새로운 선수 수급을 위하여 영입된 많은 스코틀랜드인들 중 두 명이었다. 당시 리버풀엔 상당히 많은 스코틀랜드 출신 선수들이 있었고 특히나 감독 맥케나를 비롯해 'Mc'으로 시작하는 성씨를 가진 선수들이 많아 'Team of Macs'로 불리기도 했는데, 맥퀸 형제들 또한 이 이명에 일조한 선수들이었다. 맥퀸은 1893년 9월 2일, 미들즈브러 아이언 폴리스와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한 리버풀의 사상 첫 풋볼 리그 경기에 출전한 역사적인 선수였다. 그는 리버풀에서의 첫 세 시즌 동안 총 37경기에 출전했고 골키퍼로서 5경기를 뛰는 등 수많은 포지션에서 뛰는 멀티 플레이어로 자리잡았다. 골키퍼와 필드 플레이어를 오가는 경력은 맥퀸을 독특한 기록의 보유자로 만들었는데, 그는 비록 2부 리그에서지만 영국 축구 역사상 필드 플레이어와 골키퍼로서 우승 메달을 획득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맥퀸은 이후 1893-94 시즌과 1895-96 시즌에 리버풀을 2부 리그에서 우승시키는데에 기여했다. 맥퀸은 스코틀랜드 국가대표로도 두 차례 출전했는데, 이는 스코틀랜드 리그 리스 애슬레틱에서 뛰는 동안 출전한 것이었다. 그의 국가대표팀 데뷔전은 1890년 3월 22일, 페이즐리의 언더우드 파크에서 열린 영국 챔피언십 경기로, 해당 경기 스코틀랜드는 웨일스를 5-0으로 이겼다. 선수 은퇴 후, 맥퀸은 풋볼 리그 심판이 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을 취득했고 1904년 짧은 기간 동안 부심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후 1918년, 그는 리버풀 이사회의 이사로 임명되어 리버풀에 다시 자리를 잡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